옛 사건사고들

조선의 범죄 조직, 검계(劍契)

윤진. 2021. 3. 24. 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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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치안이 좋은 편이다.

CCTV, 블랙박스 등 시선도 많고

시민의식이랄까, 밤에 만취된 사람이 혼자 있어도

그다지 해외에 비해 위험한 느낌이 안 든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음지에서 활동하는 범죄조직은 꼭 있으니

오늘은 조선시대의 범죄조직 중 검계에 대해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어떤 성향인지, 어떤 특징이 있는지

소개해 보겠다.

 

 

이해를 돕기 위한 범죄 조직짤

칼 검(劍), 맺을 계(契) 검계(劍契).

칼로 모인 조직이다.

 

얼마나 오래되는지 유래는 알 수 없으나 "숙종" 시기 이후로 기록이 발견된다

 

ㅋㅋ이들의 막장력은 현대의 조직폭력배나 마피아보다 더하는 집단이었다.

오히려 마피아가 와서 한 수 가르침을 받고 갈 정도.

 

구성원은 서얼이나 중인 등 출세가 불가능한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고,

원래는 장례식을 위한 향도계(香徒契)에서 변형되었다고 한다.

 

항상 검을 차고 다닌다 해서 사람들이 검계라고 불렀고

또 다른 말로는 홍동계, 살략계라고도 한다.

 

===추가 정보===

비슷한 성격을 가졌던 집단으로는 살주계(殺主契), 살반계(殺班契), 살악계(殺掠契) 등이 있다.

이쪽도 만만치 않은데 노비를 비롯한 피지배층 / 하층민이 중심이 되어 있고,

주인이나 양반, 부패한 부자 등을 죽이고 일가를 강간하는 것을 모의하고 실행하는

일종의 테러 집단이었다.

예) 드라마 [추노]에 나오는 '노비당' 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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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은 오랫동안 전쟁이 없는 시대를 거치면서 주로 무(武)를 천시하는 풍조를 띠게 된다.

정신수양이라고 하며 국궁을 하거나 놀이처럼 즐기는 씨름, 택견 정도를 빼면

민간이 단체로 무술을 연마하는 것도 반역, 역모로 취급해 전통무술의 명맥이 거의 끊겼고

이런 사회 속에서 역으로 무를 숭상하는 풍조를 주장했다.

옷차림, 관료에 대한 테러 사건 등에서 강한 반항정신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검계의 주 무기

이들이 주로 사용하는 것은 창포 검, 죽장도 같은

은닉, 지팡이처럼 위장하기 쉬운 암습, 암살용 검이다.

012
창포검, 옆으로 넘겨보세요!

이런 창포 검들로 수시로 칼부림을 했다고 한다.

이들은 몸에 칼자국이 없는 이는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흉폭한 자는 자해를 하는 것을 자주 보여줬다.

 

검계의 특이한 패션

창포검을 잘 설명한 돌아온 일지매 드라마

특히 옷차림이 특이했는데, 정상적인 옷차림을 거부하였다.

비단옷 위에 허름한 옷을 걸치고 다니고,

얼굴을 가리는 높은 삿갓을 눌러쓰고, 눈 부위에 구멍을 뚫어 보고 다녔다고 한다.

맑은 날에는 나막신을 신고, 비가 오면 가죽신을 신었다.

(뭐지? 청개구리인가? 검계는 관종 모임과 다를 바가 없다.)

 

검계의 활동

이들이 하는 일은,

주로 기루에 머물며, 살인, 강도, 약탈, 부녀자의 겁간 등을 일삼아 나라에서 골칫거리로 생각했다.

일부 기록에 나오는 검계의 행동 강령을 보면

'양반을 죽이고 재물을 갈취한다. 부녀자를 잡아다 강간한다.'

같은 막장 행위밖에 없다.

현대의 조폭도 이렇게 까지 비 인륜적 행위를 하진 않는다.

영화, 범죄와의 전쟁

검계 중 일부는 주막이나 기생집 뒤를 봐주는 기둥 서방질이나 돈놀이로 제법 돈과 위세를 부렸다고 하는데

이런 폭력배들은 단순 살육 집단인 검계와 구분해서 '왈자'라고도 불렀다.

 

불한당들 이긴 하지만, 기록에 따르면 이들은 뛰어난 무예 실력을 지닌 이들로 추정된다.

《조선왕조실록》에서 영조 9년의 기록을 보면 검계의 암살자로 추정되는 이가

훈련대장 장붕익을 암살하러 들어왔다 들켰는데, 장붕익이 직접 검을 휘둘러 공격했으나

붙잡지 못하고 벽을 타 넘고 도망쳤다는 기록이 있다.

이로 미루어 볼 때 이들 검계가 얼마나 뛰어난 실력을 지닌 이들인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뛰어난 월담 능력

ㅋㅋㅋ민첩한 월담


이들의 장기 중 하나가 담 뛰어넘는 것인데 민속촌이나 한옥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조선 시대의 담장이 그리 높지는 않았지만 벽을 단숨에 타 넘었다는 것을 봐서는

몸도 매우 날랬던 것으로 생각된다.

검계 중 상당수가 의금부 나장이나 궁궐의 무예별감 같은

하급 무인 출신이기도 했기 때문에 그런 것도 있다.

위에서 언급한 숙종~영조 대의 포도대장이었던 장붕익은 검계의 행패를 묵과하지 않아

군사를 풀어 행패 부리고 다니는 검계를 잡아다가 모조리 죽였기 때문에

당시 검계들이 제일 두려워하는 대상이었다.

 

검계의 일원들은 모두 몸에 칼자국이 있었고, 자기들끼리도 칼자국이 있냐 없냐로 신원 확인을 하기도 했다.

그래서 장붕익은 칼자국 있는 사람들을 죄다 잡아들여 족쳤다고 한다.

당시 검계 보스였던 표철주 장붕익을 두려워해 한양에서 달아났다가 

장붕익이 죽은 뒤에 꼬부랑 영감이 되어서야 겨우 한양으로 돌아왔을 정도였다.

 결국 이들은 영조 대에 이르러 남김없이 소탕되어 대부분 그 모습을 감추었다.

그러다 조선이 본격적으로막장 화가 되는 순조 대에 와서야 다시 그 모습을 드러내었다.

어쨌든 아무리 강령 맞추고 폼 잡아도 공권력이 멀쩡한 국가가 때려잡으려고 작정하면

버틸 수 있는 조폭 집단 따위는 없다는 예시 중 하나.

 

+(반면 옆 나라 섬 일본에서는 이런 야쿠자들을 하나의 치안 수단으로 보았기 때문에

거물 급 인사들이 야쿠자들과 연루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특히 앞서 언급했던 살주계(殺主契)라는 노비들이 결성한 주인들을 죽이자는 비밀결사와 결합,

혹은 그 멤버들이 검계로 유입되었는데,

그 이유는 검계의 행동 강령인 양반을 죽이자나 부녀자를 강간하자는 강령이 살주계의

그것과 일치하는 경우가 많아서였다.

물론 살주계나 검계나 포도청에 걸리면 박살 나는 건 매한가지였다.

다만 검계보단 살주계는 일종의 신분제에 대한 불만이 정권에 대한 도전으로 보일 수 있으므로

제보가 있을 시에는 검계보다 우선 대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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